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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월 하고도 14일. 

책상위에 놓인 탁상 달력에 발렌타인데이라고 쓰여져 있다.

뭐지? 대단한 기념일도 아닌 이날을 굳이 표시하여 달력을 만들어 낸단 말인가!

그렇다. 이날은 어찌보면 대단한 날일지 모른다.

몇주 전부터 온통 초콜릿 판매에 혈안이 되어있다.

동네 슈퍼, 대형마트 할거없이 진열대란 진열대에는 이름모를 초코과자들로 넘쳐난다.

이뿐이겠는가,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우리 둘째딸 마저도 오늘이 무슨날인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

왜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날이라고 꼭 꼬집어서 이날을 만들어 냈을까?

남자가 여자에게 주면 안되나? 

짐작컨데 다음달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위한 노림수이지 싶다.

옛말에 '주는것이 있으면 받는것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를 보면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 밸런타인 주교가 군인들의 군기 문란을 우려하여 남자들을 더 많이 입대시키기 위해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인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축일이라는 주장과 서양에서 새들의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 2월 14일이라고 믿은데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이날은 남녀가 서로 사랑을 맹세하는 날로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유래에서 보듯이 누가 초콜릿을 주는지 하는 주체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오늘날처럼 초콜릿을 보내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일본의 한 제과업체 광고에서 '발렌타인데이 = 초콜릿 선물하는 날' 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다.

그후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 고백 캠페인' 을 기획한 제과업체에 의해 지금처럼 이렇게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발렌타인데이는 일본풍의 과도한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다. 일본풍도 좋고 제과업체의 상술도 좋다고 치자.

초코과자를 주고 받으며 나누는 인간관계의 정(情).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이벤트 일지도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그 본연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직장 여성인의 경우 오늘은 고통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

과연 누구까지 초코과자를 챙겨줄건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직장 내에서 선물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은 분명 다르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알고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선물을 주려니 돈이 한두푼 드는게 아니다. 

 

그리고 주위의 많은 유통업체들이 이날의 인기에 편승해 각종 이벤트와 할인행사를 내걸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급호텔은 레스토랑과 연계해 수십만원을 웃도는 패키지상품을 내놓았고, 백화점들은 수천만원짜리 시계 판촉행사와 초고가 수입 초콜릿 판매를 늘리는가 하면 아이들을 겨냥한 고가의 장난감도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초고가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시국에 맞지 않는 사치와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견과 함께 개인의 구매력에 따른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함께 나온다.

특히 올해는 끝나지 않은 AI와 구제역 파동, 탄핵 정국 등 불안한 시국 상황에도 상술에 편승한 발렌타인데이 상품들이 예년보다 더 많이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현대백화점 한정 행사


또한 발렌타인데이를 순수하게 받아드려야 할 어린이까지 이런 사치성 이벤트의 대상이 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해 씁쓸한 생각이 든다.

특히나 한달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이벤트성 기념일들.

달력에도 표시될 만큼 중요한 날인지, 아니면 이 사회가 부추기고 있는건 아닌지. 

과연 누구를 위한 발렌타인데이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거 같다.